건축가는 멋진 건물의 외관을 구상하는 사람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실제 업무에서는 디자인만큼 토지 조건과 관계 법령, 건축주의 예산, 구조와 설비, 공사방법을 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
국내에서는 ‘건축가’와 ‘건축사’라는 표현이 함께 사용된다.
건축가는 건축을 계획하고 설계하는 사람을 폭넓게 가리키지만, 건축사는 국가 자격을 취득하고 법에서 정한 설계와 공사감리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가를 뜻한다.
「건축사법」도 건축사의 주요 업무를 건축물의 설계와 공사감리로 규정한다.
그렇다면 건축주는 아이디어만 가지고 건축사사무소를 찾아가도 될까? 첫 상담 이후에는 어떤 도면이 만들어지며, 설계를 마친 건물은 어떻게 실제 공간으로 완성될까?

건축가는 첫 상담에서 무엇을 확인할까?
건축설계는 그림을 그리는 일보다 질문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건축주는 “1층에는 카페를 열고 위층에는 거주하고 싶다”거나 “가족이 오래 살 단독주택을 짓고 싶다”는 요구를 제시한다. 건축가는 이 요구를 토지 조건과 예산 안에서 실현할 수 있는지 검토한다.
가장 먼저 확인하는 것은 토지다. 토지 면적이 같더라도 용도지역과 건폐율, 용적률, 높이 제한, 도로와의 관계, 주차 기준 등에 따라 지을 수 있는 건물의 크기와 형태가 달라진다.
건폐율은 대지 중 건물이 차지할 수 있는 바닥 면적의 비율이고, 용적률은 대지 면적에 대한 지상층 연면적의 비율이다.
대지가 300㎡이고 적용 가능한 건폐율이 60%, 용적률이 200%라고 가정하면 건축면적은 최대 180㎡, 지상층 연면적은 최대 600㎡로 단순 계산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계산만 보고 반드시 600㎡의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대지 모양과 도로 조건, 주차 공간, 일조 기준, 피난 동선 등을 반영하면 실제 설계 가능한 면적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적 조건과 함께 건축주의 생활방식이나 사업계획도 확인한다.
주택이라면 가족 수와 수납량, 채광 방향, 손님 방문 빈도 등을 묻는다. 상업시설이라면 예상 고객 수와 좌석 수, 주방과 창고의 크기, 직원과 상품이 이동하는 동선까지 살펴야 한다.
이 내용을 정리해 건물의 배치와 층별 구성, 대략적인 형태를 제안하는 과정이 기획설계 또는 계획설계다.
건축가는 평면도와 입면도, 단면도, 모형이나 3차원 이미지를 활용해 건축주가 공간을 이해하도록 돕는다.
첫 번째 계획안이 그대로 확정되는 경우는 드물다.
방을 넓히면 복도가 좁아지고, 창을 크게 만들면 구조와 냉난방 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
주차 공간을 확보하다 보면 1층의 사용면적이 줄기도 한다. 건축가는 이렇게 서로 충돌하는 조건을 조정하면서 설계안을 발전시킨다.
계획안은 어떻게 공사 가능한 도면으로 바뀔까?
건축주의 동의를 받은 계획안은 인허가와 실제 공사에 사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설계로 발전한다. 이 단계에서는 건축도면뿐 아니라 구조와 전기, 기계설비, 소방, 통신 등 여러 분야의 내용이 함께 검토된다.
건축가가 모든 분야를 혼자 계산하는 것은 아니다.
구조기술자는 기둥과 보, 기초가 건물의 하중을 견딜 수 있는지 검토한다. 기계설비 담당자는 냉난방과 급수·배수 계획을 세우고, 전기 담당자는 전력과 조명 계획을 마련한다. 건축가는 각 분야의 결과가 하나의 건물 안에서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한다.
대표적인 충돌 사례가 배관과 구조물의 간섭이다. 화장실 배수관이 지나가야 할 위치에 구조 보가 놓여 있다면 현장에서 임의로 해결하기 어렵다. 천장 속에 들어갈 덕트와 배관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지 않으면 완공 후 천장이 예상보다 낮아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를 공사 전에 발견하기 위해 평면도와 입면도, 단면도, 상세도, 재료표, 창호도 등을 작성한다. 최근에는 건물의 정보를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건축정보모델을 활용해 구조와 설비의 간섭을 미리 확인하기도 한다.
설계는 일반적으로 계획설계와 기본설계, 실시설계로 구체화된다. 계획설계에서는 건물의 규모와 공간구성을 정하고, 기본설계에서는 형태와 주요 재료, 구조와 설비의 방향을 결정한다. 실시설계에서는 시공자가 실제 공사에 활용할 수 있도록 재료와 치수, 접합방법 등을 상세하게 표시한다.
건축주의 요구가 뒤늦게 바뀌면 여러 도면을 함께 수정해야 한다.
화장실 위치 하나를 옮겨도 벽과 문, 급수·배수관, 전기설비, 환기계획이 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설계비와 기간은 건물 면적뿐 아니라 용도와 난도, 협의 분야, 수정 횟수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실시설계가 끝나면 관계 기관의 허가 또는 신고 절차를 거친다. 기준에 맞지 않는 부분이 확인되면 도면과 서류를 보완해야 한다. 인허가가 완료되면 시공사를 정하고 착공을 준비한다.
여기서 자주 생기는 오해가 있다. 건축사가 도면을 만들었다고 해서 건물을 직접 짓는 것은 아니다. 건축사는 공간을 계획하고 설계도서를 작성한다. 시공사는 그 도면을 토대로 자재와 장비, 작업자를 투입해 건물을 만든다.
공사가 시작된 뒤 건축가는 어떤 일을 할까?
설계도면이 완성됐다고 건축가의 일이 모두 끝나는 것은 아니다.
공사현장에서는 설계 단계에서 확인하기 어려웠던 지반 상태가 발견되거나, 예정한 자재를 제때 구하지 못하는 등 다양한 변수가 생긴다. 건축주가 공간이나 마감재 변경을 요청하는 경우도 있다.
변경이 필요하면 공사비와 기간, 구조와 설비, 관련 기준에 미치는 영향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
단순히 저렴한 자재로 바꿨더라도 시공방법이 복잡해지면 전체 비용이 오를 수 있다. 반대로 가격이 높은 자재라도 작업시간과 유지관리 부담을 줄여 장기적으로 유리할 수 있다.
건축사가 공사감리를 맡았다면 공사가 설계도서대로 진행되는지 확인한다.
감리는 공사를 직접 수행하거나 현장을 대신 운영하는 업무와는 다르다. 설계도서 반영 여부와 자재의 기준 적합성, 주요 공정의 상태 등을 확인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시공자와 건축주에게 필요한 조치를 요청한다.
「건축공사 감리세부기준」에서도 공사감리를 설계도서에 따른 시공 여부와 품질관리·공사관리·안전관리 등을 확인하는 업무로 설명한다. www.law.go.kr 다만 감리의 범위와 현장에 머무는 방식은 건물의 용도와 규모, 계약조건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건축사사무소의 주요 수입은 설계와 감리 업무의 대가에서 발생한다.
계약금액 전체가 수익으로 남는 것은 아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력의 인건비와 구조·설비 분야 협력비, 도면 출력과 모형 제작비, 현장 방문비, 사무실 운영비 등이 들어간다.
가령 설계 계약금액이 5,000만 원이고 구조·설비 협력비 1,200만 원, 프로젝트 인건비 2,000만 원, 출력과 현장 방문 등에 300만 원이 들었다면 운영비 반영 전 남는 금액은 1,500만 원이다. 이는 실제 설계비 기준이 아니라 수입과 비용의 구조를 보여주기 위한 가상 계산이다.
같은 면적이라도 설비가 복잡한 병원과 구조가 단순한 창고의 업무량은 다르다.
설계 변경 횟수와 현장 거리, 공사기간, 인허가 난도도 건축사사무소의 수익성에 영향을 준다.
공사가 끝나면 준공도서와 감리 관련 자료를 정리하고 사용승인 절차를 진행한다.
사용승인은 완성된 건물이 허가받은 내용과 관계 기준에 맞게 지어졌는지 확인한 뒤 실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절차다. 이후 건축주에게 건물을 인도하면 하나의 프로젝트가 마무리된다.
건축가에게 필요한 능력도 그림 실력에 한정되지 않는다. 공간을 구상하는 능력과 함께 법규를 해석하고 도면을 정확하게 작성하며, 건축주와 기술자, 시공자 사이의 의견을 조율하는 능력이 필요하다.
커리어넷도 건축사가 조형미와 경제성, 안전성, 기능성을 고려해 설계도서를 작성하고 감리 업무를 수행한다고 설명한다.
결국 건축가는 건물의 외형만 디자인하는 사람이 아니다. 건축주의 막연한 요구를 구체적인 공간으로 바꾸고, 토지와 법규, 예산과 기술 조건을 조정하며, 여러 분야의 설계를 하나로 연결한다.
건축물 하나가 완성되기까지는 건축주와 건축사, 구조·설비 기술자, 시공사, 자재업체, 행정기관이 함께 움직인다. 그 중심에서 아이디어를 공사 가능한 도면으로 만들고, 도면이 실제 건물로 이어지도록 조정하는 것이 건축가의 핵심 업무다.
참고자료
- 국가법령정보센터, 「건축사법」
https://www.law.go.kr/법령/건축사법 - 국가법령정보센터, 「건축법」
https://www.law.go.kr/법령/건축법 - 국가법령정보센터, 「건축공사 감리세부기준」
https://www.law.go.kr/행정규칙/건축공사감리세부기준 - 교육부 진로정보망 커리어넷, 직업정보 ‘건축사’
https://www.career.go.kr/cloud/w/job/view?seq=1277